중국 고전소설 《육포단(肉蒲團)》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문인 이어(李漁)다.
이어는 단순히 소설만 쓴 사람이 아니었다. 희곡을 쓰고 직접 극단을 운영했으며, 책을 펴내고 팔았고, 무대 연출과 정원·건축·음식·건강에 관한 생각까지 기록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면 작가이자 공연 기획자, 출판인, 생활문화 비평가를 한 사람이 모두 겸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방면에서 활동한 이어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왜 파격적인 소설 《육포단》의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명나라 말기에 태어나 청나라를 살아간 문인
이어는 1611년경 태어나 1680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은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격변기와 겹친다.
그는 문인 집안에서 성장해 과거시험을 준비했지만 안정적인 관직 생활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지식인에게 과거 급제는 가장 익숙한 성공 경로였지만, 이어는 정치적 혼란과 시험 실패 속에서 다른 생존 방식을 찾아야 했다.
이어가 선택한 길은 글과 공연이었다. 항저우와 난징 같은 상업·문화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설과 희곡을 쓰고, 독자와 관객이 무엇을 재미있어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의 글에서 유난히 생생한 대화와 빠른 사건 전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해설이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어에게 문학은 관직을 얻기 위한 교양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린 직업 작가
이어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글쓰기와 출판을 실제 생업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17세기 중국에서는 도시의 성장과 인쇄문화의 발달로 책을 사서 읽는 독자가 늘고 있었다. 이어는 이 새로운 독자층을 의식하며 대중이 읽기 쉬운 이야기와 공연하기 좋은 희곡을 만들었다.
난징에서는 개자원서포(芥子園書鋪)라는 출판 공간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의 편집과 출판, 유통에도 관여했다. 해적판과 무단 복제가 작가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사실에도 민감했다.
현대의 저작권 제도와 같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과 문체를 하나의 가치로 만들고 작품을 통해 수입을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이어는 중국의 초기 직업 작가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
직접 극단을 이끈 희곡 작가
이어의 또 다른 중심 무대는 연극이었다.
그는 희곡을 쓰고 극단을 조직해 여러 지역을 다니며 공연했다. 배우의 동선과 대사, 무대 장치, 관객의 반응을 실제 공연 현장에서 경험한 작가였다.
이어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거나 중심인물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했다. 한 작품은 하나의 중심 사건을 향해 움직여야 하고, 무대에서 관객이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감각은 그의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장면의 전환이 빠르고, 인물의 욕망이 분명하며, 우연과 반전이 연극처럼 배치된다. 《육포단》 역시 자극적인 사건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앙생의 욕망과 그 대가라는 중심축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어의 대표작은 육포단만이 아니다
이어를 《육포단》 한 작품만으로 기억하면 그의 넓은 관심사를 놓치기 쉽다.
대표적인 소설집으로는 《무성희(無聲戲)》와 《십이루(十二樓)》가 있다. ‘소리 없는 연극’이라는 뜻의 《무성희》라는 제목은 소설을 읽는 일이 종이 위에서 연극을 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그의 희곡들은 사랑과 혼인, 신분과 성 역할을 둘러싼 사건을 희극적으로 풀어낸다. 진지한 교훈을 앞세우기보다 오해와 반전, 인물의 욕망을 활용해 관객을 웃기면서 사회의 관습을 비튼다.
이어의 가장 폭넓은 저술로는 1671년에 간행된 《한정우기(閒情偶寄)》가 꼽힌다. 이 책에는 연극과 연출에 관한 이론뿐 아니라 주거 공간, 정원, 가구, 옷, 음식, 건강과 일상의 즐거움에 관한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소설, 공연, 출판, 생활미학은 서로 동떨어진 활동이 아니었다. 이어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보고, 읽고, 먹고, 머물며 즐거움을 느끼는가였다.
이어는 쾌락만을 찬양한 작가였을까?
이어의 작품에는 아름다움과 감각적 즐거움에 관한 관심이 자주 등장한다. 이 때문에 그를 단순히 쾌락을 찬양한 인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즐거움은 대개 규칙과 기술을 동반한다. 연극은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되어야 하고, 집과 정원은 실제 생활에 편리해야 하며, 음식과 건강도 몸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육포단》의 태도 역시 단순하지 않다. 작품은 욕망을 대담하게 묘사하면서도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 인물이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준다.
욕망을 감추기보다 정면으로 다루되, 그 욕망이 인간관계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끝까지 따라가는 것. 이것이 이어의 다른 작품과 《육포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육포단의 작가는 정말 이어일까?
《육포단》은 이어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자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초기 판본에는 저자의 본명이 명확하게 적혀 있지 않으며, 작품은 여러 제목과 필명 아래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는 이어의 작품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반면 다수의 연구자는 《육포단》의 문체와 어휘, 서술자의 말투, 희극적 장면 구성, 욕망과 인과응보를 다루는 방식이 이어의 다른 소설과 매우 가깝다고 설명한다.
2022년 발표된 왕샤오의 연구는 판본과 이어 특유의 어휘를 비교해 이어 저작설을 지지했다. 서양의 중국문학 연구자들 역시 주제와 문체의 강한 유사성을 근거로 이어에게 귀속하는 견해를 제시해 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어가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다수 연구자가 이를 지지하지만, 판본상의 직접적인 증거를 둘러싼 논쟁은 남아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육포단을 읽기 전에 이어를 알아야 하는 이유
작가의 삶을 안다고 해서 작품의 모든 의미가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어의 다른 활동을 알고 《육포단》을 읽으면 몇 가지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미앙생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서술자는 관객의 반응을 의식하는 극작가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빠른 장면 전환과 극적인 우연은 무대에서 단련된 이야기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책의 처음과 끝에 배치된 도덕적 경고도 단순한 면피라고만 보기 어려워진다. 이어의 작품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일과 그 즐거움을 비평하는 일을 동시에 시도하기 때문이다.
《육포단》이 성애소설이면서 풍자소설이고,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이면서 인과응보를 말하는 작품인 이유도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사람 안에 작가와 사업가, 예술가가 함께 있었다
이어는 전통적인 문인의 길에서 벗어나 글과 공연, 출판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든 인물이었다. 독자를 의식하면서도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었고, 연극의 이론을 세우면서 직접 무대를 운영했으며, 문학에서 일상의 공간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넓혔다.
《육포단》은 그런 이어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예외적인 작품이라기보다 그의 관심사가 가장 파격적인 형태로 만난 소설에 가깝다. 인간의 욕망, 관객을 끌어당기는 이야기, 웃음과 풍자, 행동의 대가가 한 작품 안에 함께 들어 있다.
영화 《옥보단》과 원작 소설의 관계, 미앙생의 이야기와 작품의 주제가 궁금하다면 시리즈 첫 글인 영화 옥보단의 원작은 어떤 책일까?도 함께 읽어보자.
야로인이 직접 번역하고 엮은 《육포단》은 전자책과 POD 종이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
참고
-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Renditions: Li Yu
- University of Michigan: Introduction to Li Yu
- Harvard University: An Anthology of Chinese Literature
- 왕샤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 육포단의 이어 저작설」
《육포단》의 저자 문제에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이 글은 이어 저작설을 지지하는 다수 견해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반영했습니다.
